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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합의’ 속 290원 인상…노동계 불씨 여전해

2025.07.11. 오전 10:40

2026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20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올해(1만20원)보다 2.9% 인상된 수치로, 월 환산액은 215만6,880원(209시간 기준)이다. 이번 결정은 2008년 이후 17년 만에 노·사·공익위원 간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매년 격렬한 대립 끝에 표결로 귀결되던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의 복원이란 상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노총 소속 위원들이 최종 표결 직전 회의장을 퇴장하면서,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최저임금위원회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의결했다. 이인재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17년 만의 합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대화의 성과로 남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근로자위원 9명 중 민주노총 소속 4명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만210~1만440원)에 강하게 반발하며 전날 회의에서 전원 퇴장했고, 최종적으로 한국노총 소속 위원 5명만 참여해 합의에 이르렀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노동자는 실수령액 200만 원도 안 되는 현실인데 이번 인상률은 현실을 외면한 수치”라며, “사용자 편에 선 공익위원들의 촉진구간 설정은 편파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한 한국노총조차도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설정된 촉진구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인상률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가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계는 이번 합의에 대해 일정 부분 평가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은 11일 논평에서 “현재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17년 만에 노사합의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수 침체와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추가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계도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사용자위원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이번 합의는 우리 사회가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난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동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내수 침체와 복합 경제 위기 속에서 고심 끝에 합의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합의 과정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위원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결과”라며 “이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대해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신속히 추진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난이나 고용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통해 공익위원 중심의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형식상 27명의 위원(근로자·사용자·공익 각 9명)으로 구성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공익위원의 판단이 사실상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심의촉진구간 역시 노동계의 최종안보다 400원 가까이 낮은 수준으로 제시됐고, 경영계 안에 대해서는 고작 30원 올린 수준이었다. 이인재 위원장은 이에 대해 “매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진 않는다”고 해명하며, 내년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성장률, 물가 상승률, 취업자 수 증감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공익위원이라는 명칭이지만 실상은 정부 의중이 반영되기 쉬운 구조”라며, “매년 비슷한 방식의 저인상률 결정은 공정성과 수용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재명 정부에서도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독일식 전문가 중심 모델을 참고해 위원회 구성 방식, 결정 절차, 인상 주기 등을 포함한 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은 노사 전문가 각 3인으로 구성된 9인의 위원회가 2년 단위로 인상안을 마련하는 다단계 체계를 갖추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현재 제도는 노사 갈등을 반복해 사회적 피로도가 크다”며 “특수고용직과 도급 근로자 문제까지 포함한 전면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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